엄마 화 돋우는 아이
아이가 자랄 때 부모가 적절한 시기에 아이에게 자기 통제권을 주거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이는 자신을 찾기 위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치열한 투쟁을 벌이게 된다.
수완이(가명)는 5세 남자아이다.
엄마에게 지나치게 반항적이고 쉴새 없이 화를 돋우는 행동을 한다고 했다.
유치원에 가려면 매번 신발 끈을 다시 매달라고 요구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바탕 떼를 써 엄마를 애먹이곤 한다고 했다.
수완이는 진료실에 들어와서도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놀잇감을 엎지르고 어질러 놓고,심지어는 창밖으로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흘끗흘끗 눈치를 보면서 자기 행동이 어디까지 허용될지 시험하고 있었다.
한편 수완이 엄마는 엄마대로 매번 진료 때마다 그동안 있었던 아이의 문제를 깨알 같은 글씨로 몇 장씩 메모해 사소한 것까지 빠짐없이 보고했다.
그냥 보기에도 아이와 엄마의 행동이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수완이에게는 선천적 약시라는 또다른 문제가 있었는데,안경을 써도 교정시력이 0.2 정도라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수완이 엄마는 아이가 시력 때문에 사고를 당하거나 다치지 않을까 불안해 했다.
이렇게 지나치게 노심초사하다보니 아이의 행동을 사사건건 통제했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면 엄마가 대신하거나 나서게 됐고,결과적으로 아이는 자율성을 침해받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의 이런 침범에 대해 수완이는 반항과 고집으로 반응했다.
아이의 반항이 이해되지 않는 엄마는 아이가 엄마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아이를 잡아 보려고만 했던 것이다.
수완이는 치료를 시작하고도 한동안 첫시간에 했던 행동을 반복했다.
자신이 지배당하느냐,혹은 치료자를 지배하느냐를 놓고 심각한 힘겨루기가 계속됐다.
하지만 치료실에서는 꼭 지켜야 할 몇가지 규칙 외에는 대부분 허용이 되었고,수완이에게 맘껏 자기 ‘힘’을 발휘하도록 하면서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게 해 보았다.
엄마에게 통제만 당하던 수완이에게는 자신에게 통제권이 주어지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런 일을 몇달 계속했더니 수완이에게는 더이상 엄마와 파워게임을 벌이는 일이 의미가 없어졌다.
일부러 엄마를 화나게 할 이유도 이제 사라진 것이다.